성곽 및 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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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위치 보기
위치 :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 651전
시대 :
조선시대
종류 :
단묘(壇廟)
내용

조선시대 지방관아의 경우 향교와 사직단, 성황단과 여단을 반드시 구비하고 있었다. 남한산성의 성황단과 여단도 광주부가 하남시 춘궁동에서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 함께 설치된 것인데 『중정남한지』에는 북문 안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을 뿐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 현재 성황단과 여단의 위치로 잡은 곳은 정확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성황단과 여단도 관아의 중요한 부속시설인 만큼 추후 위치변경이 되더라도 유적으로 잡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壇은 조선시대에 서울과 지방의 각 관아에서 성 북쪽에 단을 쌓아 제사를 모시던 곳으로서, 자손이 없어서 제사를 받지 못하는 귀신, 흉년에 굶거나 얼어 죽은 귀신, 그리고 성황신을 모셨다. 여기서 ‘?’는 귀신을 뜻한다. 『중정남한지』에는 1년에 세 번 청명일과 7월 15일, 시월 초하루에 각각 제사를 지낸다고 하였다. 城隍은 우리말로 서낭이며, 토지의 富樂을 수호하는 신으로서 대개 길가의 큰 나무가 이 서낭신의 거처가 되었다. 이 성황당은 여단과 마찬가지로 광주부에서 공식적으로 제사를 지내는 단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남한산성에는 남문과 서문, 북문 등 각 성문밖에 자연발생적인 서낭당이 여러 곳이 있다. 여단터로 추정한 곳은 북문안의 동편지역으로서 이곳에는 1.5m 정도의 축대위에 50평정도의 축대가 형성되어 있으며, 큰 바위가 있다. 주변에는 와편과 자기편이 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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