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 및 옹성

유적위치 보기
위치 :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 94임
시대 :
조선시대(1735)
종류 :
단묘(壇廟)
내용

이 유적은 광주부의 사직단터로서 남단사와 한흥사의 중간지점에 있다. 남쪽으로 115m 거리에 남단사가 있고, 북쪽으로 193m 거리에 한흥사가 있으며, 남단사와 사직단, 한흥사가 거의 같은 높이에 있어, 등고선방향을 따라 약 2m 내외의 구도로가 조성되어 있어 쉽게 이동이 가능하다. 제9암문이 있는 곳에서 북쪽으로 100m 떨어진 거리이며, 해발 406m 지점에 있어 시계가 매우 좋았을 것이지만, 지금은 수목으로 인하여 전망이 좋지 않다. 이곳은 동서로 뻗은 능선의 북사면으로 경사가 매우 완만하여 비교적 넓은 평탄지역이 조성되어 있다. 『중정남한지』에는 이곳의 사직단이 영조11년(1735) 광주의 고읍리에서 이곳으로 옮겼으며 주위는 담으로 둘렀고, 4개의 문과 전각이 있었으며 左社, 右稷의 예에 의하여 왼쪽은 토지신, 오른쪽은 곡식의 신을 모시는 두 단이 있었다고 하였다. 현재 이곳에는 방형의 단과 담장흔적이 남아 있는데 사면의 아래쪽에 해당하는 북쪽부분으로 상당부분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 담장은 폭2m, 높이 1m 정도이며, 담장을 쌓았던 돌들이 주변에 산재되어 있다. 담장 내부의 단은 동서 방향으로 17m 이고 남북방향도 17m 범위까지 담장의 흔적이 확인된다. 외곽담장 내부는 평탄하고 별다른 흔적이 관측되지 않지만 기록에 의하면 사방에 문이 있고, 전각과 두 개의 단이 있었을 것이다. 사직은 토지신과 오곡신을 모시고 제사 드리는 곳으로서 두 신위를 함께 모시기 때문에 사직단이라고 한다. 토지와 오곡은 국가와 민생의 근본이 되는 만큼 나라에서는 나라와 민생의 안정을 기원하고 보우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국사단과 국직단을 설치하였고, 각 지방관청 단위로 지방사직단을 설치하고 제사를 드렸다. 국사단과 국직단은 현재 서울의 사직동에 복원되어 있으나 지방의 사직단을 대부분 훼손되어 이처럼 원형이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현재 남한산성내에는 종묘를 상징하는 좌전과 사직을 모시는 우실이 있어 사직단이 2개소인데, 이것은 좌전과 우실은 국사단과 국직단을 의미하고, 이 사직단은 광주부의 사직단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 사직단 내에는 20-30년생의 잡목이 우거지고 낙엽이 쌓여 유적의 위치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