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 및 옹성

유적위치 보기
위치 :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 310-1사
시대 :
조선시대(1683)
종류 :
사묘(祠廟)
내용

성안의 동문안쪽 옥정사터 남쪽에 있는 사당으로, 남한산성 관리사무소에서 동북쪽으로 193m 거리에 있으며, 해발 344m 여서 전망이 매우 양호하다. 현절사는 병자호란 후 청나라의 심양(봉천)에 끌려가 순국한 홍익한, 윤집, 오달제의 3학사와 김상헌, 정온을 추배하여 모신 사당이며 ‘顯節’이란 ‘절의를 세상에 밝게 드러내 보인다’는 뜻이다. 사당은 숙종14년(1688)에 유수 이세백에 명하여 세웠으며 숙종19년(1693)년 봄에 사액하였다. 그런데 17세기 말경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영남대학교박물관 소장의 「南漢山城圖」에는 삼신사우(三臣祠宇)라고 하는 건물이 남단사와 사직단 아래쪽 산 사면의 중간부분에 표기되어 있다. 이것은 숭열전이 현 위치에 건축되기 전까지 세 신하를 모신 사당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건물은 현재 성내의 사설수련원인 민족도장 동쪽 편에 위치한 능선위에 서향으로 지어져 있다. 사당은 본당과 좌우에 있는 부속건물을 합하여 3동으로 구성되었는데, 산등성이에 축조되었기 때문에 본당과 부속건물이 단을 이루고 있고 단 위에는 담단을 둘러 그 중앙에 솟을 대문을 내었다. 지붕 양식은 홑처마를 두른 맛배지붕이며 2출목이익공의 주심포양식이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3칸, 측면1칸의 크기이며, 정면각 칸에는4쪽의 여닫이 격자문을 달았다. 솟을대문이 2개있는데 밖의 것은 사당출입시에 사용하도록 되어있고, 또 하나는 본당과 수속건물을 구분하는 담장의 중앙에 위치하여 본당의 출입시 사용토록 되어 있다. 대문은 여닫이 2쪽문으로 2개의 대문 모두 중앙에 태극무늬가 그려져 있다. 부속건물은 정면3칸, 측면1칸의 규모인데 역시 맛배지붕, 홑처마양식의 건물이다. 2동의 건물이 모두 중앙의 1칸에는 우물마루가 배치되고 좌우에는 2쪽 여닫이 격자문을 가진 방이 꾸며진 자연석을 주춧돌로 한 단아하고 소박한 인상을 주는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