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 및 옹성

유적위치 보기
위치 :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 717사
시대 :
조선시대
종류 :
사묘(祠廟)
내용

숭렬전은 백제 시조 온조왕의 사당으로서, 온조왕을 주향으로 모시고, 조선조 인조 때의 장군인 이서의 신주를 배향하고 있다. 이곳을 숭열전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정조19년(1795)의 사액에 의한 것이며, 그전에는 백제시조묘, 백제시조 온조왕사당, 온조왕묘, 온왕묘, 온조묘. 백제 온왕묘, 남한묘, 온조전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 1400년대 후반에 편찬된 『국조오례의』에는 中祀에 올라 나라에서 제사를 올렸던 곳이다. 숭렬전과 관계가 있는 『重訂南漢志』의 기록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옛날 옛날 삼국이 병립하니 고씨의 아들이 실은 백제이다....... 한강의 남쪽이요 산을 日長이다. 이 땅은 아름다워 벼 심으면 풍년이라, 드디어 대도(大都)가 되니 天府요 金湯이다....... 빛나도다. 조각과 단청이여~ 산천이 氣를 더하고, 풀과 나무가 빛나니 억년도, 만년도 候는 나를 어기지 말고 我를 壽하고 아를 福하라. 바다가 편안하고 황하가 맑으면 무엇으로 보답하리오. 제수가 살찌고 향기로우리다. 이 글은 1795년 정조때 ‘숭열전’이라 사액하면서 이 사당에서 올린 제문의 일부이다. 본전은 정면 3칸, 측면2칸의 맛배지붕 형식이며, 2동의 부속건물과 솟을삼문이 세워져 있다. 인조16년(1638)에 새로 지었고, 매년 춘추로 예조에서 향촉을 보내와 제사를 모셨던 곳이다. 이 숭열전은 온조왕과 관련하여 또 다른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인조가 어느날 밤에 꿈을 꾸었는데, 꿈에 온조왕이 찾아와서 자기의 묘(廟)를 세워준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면서 인조를 치하하였다. 그리고 “나 혼자서는 지내기가 너무 적적하니 당신의 신하 이서를 나에게 보내 줄 수 없겠소?”하므로 인조가 쾌히 승낙하고 깨어보니 꿈이었다. 그런데 왕이 아침에 일어나자 광주유수 이서가 간밤에 죽었다는 기별이 왔다. 이에 인조는 이서를 온조왕이 데려간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지난 밤에 꾼 꿈이야기를 하고, 이서를 숭열전에 배향케 한 것이라고 한다. 본당은 좌우측에 아래단이 둥근 형태를 한 방풍벽을 가진 맛배지붕 형식을 한 정면3칸, 측면2칸의 건물이다. 처마는 겹처마를 둘렀으며 정면3칸에는 여닫이 4쪽 격자문을 달았다. 주춧돌은 둥글게 잘 다듬어졌으며 그 위로 민흘림의 기둥이 세워져 있고 포의 형태는 주심포양식의 건물이다. 내부의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하였다. 2동의 부속건물은 맛배지붕으로 방풍판이 없는 대신 측면에도 창을 내지 않고 회벽을 도리까지 올려 풍우를 막게 하였다. 3칸으로 3개의 방을 꾸몄으며 중앙에는 여닫이 2쪽 격자문을 , 좌우칸에는 외쪽 여닫이 격자문을 달았고 마루는 없다. 천장은 연등(삿갓)천장으로 하였으며 청색의 단청으로 소박하고 안정감 있는 분위기를 갖는다. 본당과 본당의 좌우측에 마주보게 한 2동의 부속건물 외에도 한 동의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 있다. 솟을 3문은 사당 출입시에 사용하도록 된 대문으로 정면3칸, 측면1칸인데 중앙의 대문은 좌우측 대문보다 높게 올렸고 중앙에는 태극무늬를 장식했으며 홑처마를 두른 맛배지붕 양식이다.

  • 숭렬전사진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