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인조 2년(1824)에 남한산성의 수축에는 승병이 큰 역할을 수행하였다. 都摠攝인 벽암대사는 각도의 승군을 소집하여 서북성을 담당하여 축성하였으며, 산성의 수어를 위하여 성내에 9개의 사찰을 두어 팔도에서 올라온 승군이 숙식하고 훈련할 수 있도록 하였다. 원래 남한산성에는 망월사와 옥정 등 2개의 사찰만이 있었는데 산성의 수축과 함께 국청사, 개원사, 한흥사, 천주사, 남단사 등 6개의 사찰을 새로 지었으며, 숙종12년 봉암성의 개축시 동림사도 함께 건립한 것으로 보이며, 한봉성의 안쪽에 있는 영원사는 가장 늦게 지어진 사찰이다. 성이 준공된 후에는 전국에서 상경한 370여명의 승군조직이 병자호란 당시 청군과 대치하기도 하였다. 승군의 조직을 보면 총섭1인과 승중군 1인, 교련관 1인, 초관3인, 기패관 1인이 있었으며, 원거하는 승군 138명은 조련에 참가하도록 하고, 지방 사찰의 義僧 356명은 경기, 강원과 삼남, 황해에 흩어져 있어 매년 6회로 나누어 두달씩 번을 서도록 하였다. 이후 영조 32년(1756)에는 의승이 번을 서는 것을 없애고 雇錢을 거두어 원거승에게 주어 그 번서는 것을 대신하게 하였다.
성내의 사찰중 현재 장경사 하나만이 당시의 모습으로 남아 있을 뿐이고 망월사와 개원사, 국청사가 현대 건물로 옛터에서 그 명맥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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