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는 성벽의 일부를 밖으로 돌출시켜 성벽으로 접근하는 적을 입체적으로 공격할 수 있도록 한 성곽 시설물중의 하나이다. 유성룡(柳成龍)의 축성론(築城論)을 보면 ‘성이면서 치가 없으면 비록 한 사람이 타 하나씩을 지킨다 하더라도 타 사이에 방패를 세워서 밖에서 들어오는 화살을 막기 때문에, 적이 성 밑으로 붙는 것을 발견하여 막아내지 못한다. 『紀效新書』에는 50타마다 치 하나씩 설치하는데 밖으로 2?丈쯤 나가게 한다. 치는 50타씩 서로 떨어져 있으므로 양쪽으로 보아 가면서 발사하기에 편리하며 적이 성 밑으로 붙어 올수 없게 되었다’고하여 치의중요성을 논하고 있다. 『국역만기요람』,민족문화추진위원회, 1984,p428
치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일반적으로 산성의 경우에는 지형을 따라 성벽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굴곡을 이루게 되어 별도의 치가 필요 없는 경우가 많다. 남한산성의 경우에도 치가 거의 필요 없을 정도로 성벽의 굴곡이 심한 편이다. 그런데 원성의 경우 1옹성과 3옹성, 연주봉옹성 부분에는 약 3m 정도 약간 성벽을 돌출시키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체성벽을 쌓으면서 동시에 축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바깥쪽에는 옹성이 돌아가고 있어 이 치의 존재는 보통 간과되고 있으나 비교적 다른 옹성보다 늦게 축성되는 것으로 판단되는 장경사옹성의 경우를 보면 체성벽에 이러한 치가 없는 것을 볼 때 원성축조시에는 연주봉옹성을 제외하고는 이러한 치만 설치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원성에 설치된 4개의 치 외에 봉암성에서 한봉성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평탄지역에도 치가 설치되어 동쪽의 완경사면과, 한봉성의 성벽으로 접근하는 적을 방어할 수 있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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