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신앙

남한산성의 민간신앙 중 매바위 치성소는 3수어장대의 울안에 위치해 있다. 수어장대를 장방형의 담장이 둘러싸고 있는데 담장의 동남쪽 모서리에 자리잡고 있다. 수어장대는 남한산성의 서쪽 봉우리인 청량산 정상 부근에 있으며, 북쪽으로 600여 미터를 가면 서문이 나온다. 남문안 로타리에서 행궁터를 끼고돌아 영월정 쪽으로 700m를 오르면 성곽길에 도착한다. 여기서 남쪽으로 꺾어져서 100m를 걸어가면 수어장대를 볼 수 있다. 웃삼거리에서 우체국의 아랫길을 타고 올라가도 수어장대에 도착 할 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조선 제 16대 인조 2년(1624)에 수어사 李曙가 벽암대사와 李晦에게 남한산성을 쌓도록 구역을 정해주었다. 벽암은 그 기한 안에 완성하였지만 남한산성의 동남쪽 축조를 맡았던 李晦는 지세의 험악함과 완벽한 시공문제 때문에 기일 내에 완공하지 못하게 되었다. 또한 이회에게 무고한 참소가 있어 이회는 참수형에 처할 운명이 되었다. 이회가 絶命하려는 순간에 어디에선가 매한마리가 날아와 이 바위에 앉아 이회를 응시하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사람들이 매가 있던 곳에 가보니 바위에 매 발자국이 남아있었다 한다. 현재는 손실되어 흔적만 남아있다. 이회의 처첩도 삼남지방에서 축성자금을 마련하여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끝내 강물에 투신자살하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매바위는 담벽의 모서리 사이에 끼어 있다. 담장의 바깥에서 보면, 높이는 3m, 길이 5.5m 두께 1.5m의 회색바위이다. 담장의 안쪽에서는 일부분만 보이기 때문에 높이는 1.9m 길이는 4m로서 바깥쪽에서 보이는 크기에 비하여 작다. 바위는 반월형의 둥그런 모습을 갖고 있으며 바위 뒤에는 徐相朝라는 이름과 바위 안쪽에는 守禦西臺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다. 임춘자(75세, 女, 南門館운영)氏는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이곳에 매의 발자욱이 선명하게 찍혀져 있었는데 일본인들이 물러가면서 매발자욱을 바위에서 파 가는 바람에 사라지게 되었다고 하였다. 바위의 꼭대기에는 여러 홈이 파져 있는데 그 중 정사각형의 모양이 한 개 있지만 파 낸 흔적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매바위는 주민들이 가내의 안녕과 복덕을 위해 치성을 드리거나 무당들이 굿을 지냈던 장소였다. 매 바위 뒤편에 비교적 넓다란 평지가 있는데 이곳에서 치성을 드렸던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