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

성문은 성으로 들어가는 주 출입구이다. 성문의 숫자나 위치는 성곽의 입지여건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보통 동, 서, 남, 북 사면에 하나씩 4대문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성문을 많이 둘 경우 출입에 편리한 측면이 있을지는 몰라도 성문의 수비와 방어에 어려움이 있으며, 아무리 큰 성이라고 하더라도 주요 간선도로는 각 방향으로 하나의 출입구만으로도 큰 불편함이 없었을 것이다. 또한 남한산성처럼 지형여건상 성문이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는 경우에는 성문과는 별도로 적재 적소에 암문을 설치하여 출입기능을 대신하도록 하였다.
남한산성의 성문은 모두 4개이다. 『선조실록』의 선조30년 2월25일 기록을 보면 선조가 남한산성에 대하여 질문하는 대목에 보면 상이 이르기를 “성터가 있는가? 그 안에 우물이 있는가?” 하니 노직이 아뢰기를 “ 돌을 다듬어 만들었으나 퇴락한 것이 2/3는 되며, 남쪽은 험하지 않은데 또 곡성을 쌓았습니다. 가운데는 큰 개울이 있으며 우물은 모두 6개소이고 수답이 거의 십여석지기나 되며, 좋은 밭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 문이 있던 자리도 있는가? 성의 역사는 이미 시작했는가?” 하니 노직이 아뢰기를 “ 동문, 남문, 수구문의 세문이 있는데 모두 이미 수리했으나 성은 공사가 매우 거창합니다. 체찰사가 당초 광주에서 군사훈련을 하고 그 군사들을 모아 돌을 운반해 터를 닦으려고 하였으나 보리 파종기가 되어 종사를 폐할 염려가 많았기 때문에 시시하지 못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인조 2년(1624)에 남한산성을 축성하기 전에도 이미 성문은 있었는데 선조대에 수축이 이루어진 상태였고 당시의 성문은 남문과, 동문, 수구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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