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해 및 창고

공해는 궁실과 관청건물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읍지류에서는 공해라고 하여 궁궐건물과 관청건물을 함께 기술하고 있지만 『重訂南漢志』에는 宮室과 官를 별도로 구분였다. 궁실에는 상궐과 하궐, 좌전, 우실, 재덕당, 한남루, 인화관을 포함시켰으며, 관해에는 좌승당, 일장각, 수어재영(연무관), 제승헌 등으로 구분하였다. 制勝軒은 판관의 아문으로서 여기에는 將廳, 敎鍊官廳, 旗牌官廳, 本廳, 軍官廳, 別軍官廳, 親牙兵哨官廳, 標下廳, 伺候廳, 書吏廳, 巡令手廳, 吹手廳, 軍牢廳, 訓導廳, 細樂手廳, 營奴廳, 僧徒廳, 鄕廳등의 관청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궁실과 관해를 구분하지 않고 『廣州府邑誌』의 기술 순서를 따르고자 한다.
그런데 이 중 현재 위치 확인이 가능한 것은 행궁지와 인화관 및 주변의 관청건물들과 포도청, 군뢰청, 수어재영, 이아 등에 지나지 않으며, 다른 관청들의 정확한 위치와 변동 과정을 알기 위해서는 추후 정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산성 내의 창고는 營庫, 新록죙出? 新豊倉, 別倉, 東倉, 新北록줍즙? 倉, 僧倉, 補餉庫, 補關庫, 城機庫, 軍器庫, 兵房所, 復戶所, 雇馬所, 助糧所, 環頭所 등이 있다. 본래 곡식을 보관하는 곳을 倉이라 하였고, 무기를 보관하는 곳을 庫라고 하였는데 후대에 가면 양자의 구분이 희미해져서 고에도 곡식을 보관하였다. 이중 補餉庫는 광주부의 수입, 지출을 관장하는 곳으로 주로 군관들의 생계비를 출납하였다. 보관고는 원래 지출하는 곳이 아니라 군향곡을 옮겨 받아 이자를 받아 돈으로 바꿔 다른 창고로 이송하는 창고이며, 성기고는 성첩 및 관청의 수리, 보수에 들어가는 경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설치한 창고이다. 軍器庫는 군기물자를 비축하기 위해, 병방소는 각 지방 향승들이 義僧防番錢을 보관하여 승군들에게 급여하기 위하여 설치된 창고이며, 復戶所란 산성 안에 거주하는 백성들이 진휼하기 위해 국가에서 전결 1,000결의 세입을 저장한 창고이다. 또한 고마소는 광주부에 사용할 말을 고용하기 위해 800냥의 경비로 20필의 말을 준비한 창고이며 조량소는 공사의 사역과 각종 貰馬의 수입으로 助粮하기 위한 창고이다.
이중 개략적이나마 위치가 확인되는 곳은 수창과 營倉, 舊軍器庫, 別倉정도이며, 다른 창고터중 城機庫, 新軍器庫, 營庫, 南倉 등 상당수는 남한산성의 개발과정에서 이미 훼손된 것으로 보이며, 東倉과 保餉庫, 營倉 등은 추후 정밀조사를 통해 확인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