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루 및 장대

임진왜란은 조선의 진법전술에 결정적인 변화를 초래하였다. 종래의 전술은 궁시류(弓矢類)에 주로 의존하였지만, 조총과 화포의 위력을 경험하고 난 이후 조선도 신무기인 조총과 화포를 주로하고, 여기에 창검과 궁시가 보조하는 전술개념으로 전환되었다. 이에 따라 산성축조에도 대포를 쏠 수 있는 시설이 기본적으로 구비되었으며, 축성기법도 접근전보다는 화포의 공격에 견딜 수 있는 형태로 바뀌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전술적인 변화가 본격적으로 성곽 축조에 반영되는 것은 17세기 후반 이후였던 것으로 보인다. 남한산성과 관련한 다음의 내용이 주목된다. 인조9년(1631)7월 4일 인조가 이르기를 “남한산성에는 한 곳도 포루가 없으니 이것이 결점이다.” 하니 이서가 아뢰기를 “ 포루는 성을 지키는 일에 가장 방해가 됩니다. 포를 쏘게 되면 연기와 불꽃으로 사방이 어두워지기 때문에 처음부터 설치하지 않았습니다. 우마장과 성위의 좁은 곳에 흙을 메우는 일은 그만둘 수 없기에 이수일에게 그 역사를 감독하여 완성시키도록 하였습니다.” 하였다. 임진왜란이 지난 후 30여년이 지났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화포의 필요성을 깊게 인식하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남한산성에 포루를 설치하지 않은 이유를 당당하게 밝히고 있다.
그러나 병자호란으로 인하여 조선은 대포의 위력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重訂南漢志』의 내용을 보면 인조 14년 12월 23일자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적이 대포를 망월봉과 남성 맞은편봉우리에 설치하고 놓기 시작하였다. 이쪽에서는 신경진이 천자포를 놓게 하여 호장(胡將)과 군졸 수명을 맞추었다. 적이 또 대포 10여대를 남격대 밖에다 설치하였는데 호준포(虎砲)라 하고, 또 홍이포(紅夷砲)라 하는 것인데 탄환이 큰 것은 사발만하고 적은 것도 거위알 만이나 하니 능히 수십 리를 날 수 있으며, 매양 행궁을 향해 놓기를 종일토록 그치지 않았다. 사창에 떨어진 것은 기와집을 세 겹이나 꿰뚫어 땅속에 한자 남짓이나 들어 박혔고, 또 연하여 성첩을 맞추어 동성 한귀가 거의 파괴되어 여장엔 이미 가릴 것이 없게 되고 신경진과 군관과 사복의 관원이 탄환에 맞아 죽었다. 관향에 있던 空席 수백 장에다 흙을 담아서 막고 물을 부어서 얼게 하여 이를 굳혔다’ 고 당시의 호준포와 홍이포의 위력을 상세하게 적고 있다.
병자호란이후 조선은 대포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지게 되어 병자호란 이후 대포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지게 되어 병자호란이 끝난 2년 뒤인 인조 16년(1638)년 원성을 증개축하면서, 원성에 옹성과 포루가 구축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봉암성이나 한봉외성, 또는 신남성의 축조도 기본적으로 적이 화포공격을 할 수 없도록 한다는 전술에 입각해서 축성하게 되었으며, 숙종31년(1705) 봉암성에 두 개의 포루(砲樓)를 증축하는 등 화포공격을 할 수 있는 포루설치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대포를 쏠 수 있는 시설을 포루라고 하는데,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이를 대부분 포루라고 표기하였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포루의 전형적인 모습은 화성에서 볼 수 있다. 화성의 포루는 성벽의 일부를 밖으로 돌출시켜 치성과 유사하게 하면서 내부를 공심돈과 같이 비워 안에 화포를 감추어두었다가 적을 공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위에는 작은 누각식의 건물을 올렸다. 반면 남한산성의 경우 『重訂南漢志』에는 포루라고 표기하고 있으며, 한국정신문화연구원소장의 「남한산성도」와 규장각소장의 「광주부도」에서도 포루로 표기하고 있는데 이는 포루의 형태가 기본적으로 같을지라도 루각의 유무에 따른 차이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 외에 포루, 또는 포좌라는 명칭이 쓰이기도 한다.
남한산성에서는 문헌기록과 현장조사를 통하여 포루는 모두 7개소에 설치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중 남옹성1에 8개, 남옹성2에 9개, 남옹성3에 5개, 장경사부근의 원성에 2개, 장경사신지옹성에 2개, 연주봉옹성, 그리고 봉암성에 2개가 설치되었다. 이중 모두 파괴되어 현재 전혀 흔적을 확인할 수 없는 연주봉옹성의 포루를 제외하면 각 포루의 수는 28개에 달한다.
포루는 체성벽의 안쪽에 폭 130cm, 높이 150cm 정도의 공간을 구축하고 성벽쪽에는 폭 50×50cm 정도의 구멍을 내어 포신을 걸칠 수 있도록 만들었으며, 좌측이나 우측벽에는 작은 이방(耳房)을 구축하여 화약이나 무기들을 비치할 수 있도록 하였다. 남한산성의 포루는 대부분 신남성방향이나 한봉방향을 향하고 있는데 그것은 사방의 산이 험준하여 적의 화포공격이 가능한 곳은 이 두 군데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