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 및 옹성

유적위치 보기
위치 :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 813임
시대 :
조선시대
종류 :
其他遺蹟(우물)
내용

국청사지 우물은 옛 국청사지에서 동남쪽으로 약 2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산성 안 마을사람들은 이 우물을 ‘아래 우물’이라고도 부른다. 정방형에 가까운 형태로 가로 90㎝, 세로 106㎝, 현재 물의 깊이는 90㎝이고, 20~40㎝ 크기의 돌로 둘레를 쌓았으며, 우물에 접근하는 곳도 다듬어져 있다. 맑은 물이 고여 있기는 하지만, 현재 이 우물은 쓰이지 않는 상태로, 위쪽에 나무와 비닐로 싼 덮개가 보호시설의 전부이다. 따라서 등산로의 중간에 있지만, 약수를 받으러 온 사람들은 이곳에서 남쪽으로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새로 생긴 약수터를 이용한다. 예전에 국청사가 남한산성을 쌓을 때 전국에서 모집된 승군의 숙식과 훈련을 해결하던 역할을 하였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당시 조선시대에 이 우물의 중요성이 매우 컸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우물에도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고려말 둔촌(遁村) 이집(李集)이라는 효자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등창이 나 갖은 약을 해드려도 효험이 없으므로 국청사에 불공을 드리러 다녔다. 불공을 드린 지 백일이 되는 날 새벽에도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길 옆에 샘물이 흐르고 있어서 세수도 하고 물도 마시려고 하는데, 물속을 보니 금붕어가 있었다. 그는 이 금붕어를 잡아서 집으로 가지고 와 소중하게 기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날 밤에 잠을 자던 아버지가 별안간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싶었지만, 곤히 자는 아들을 깨울 수가 없어 금붕어가 들어 있는 물을 먹었다. 그러자 곧바로 종기가 터지고 시원해지면서 그 길로 병이 나았다. 이 일이 있은 후 마을 사람들 사이에 이 우물이 병이 낳는 샘물로 알려져서 일부러 멀리서도 마시러 오는 사람이 많았다.” 이와 같은 전설 때문인지 산성마을 사람들 간에는 갓 태어난 어린아이의 태열이 심할 때 이 물을 떠다 씻겨주면 말끔히 낫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또 다른 이야기에는 새벽이면 이 우물에서 금닭이 나와 훼를 치며 울었다는 전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