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박물관은 우리문화유산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활용하기 위한 조사·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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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업지구 조사관 연구개요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거의 모든 시기의 유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유적을 확인한 것은 삼국시대 전기 주거지 1기 와 고려시대 건물지 4기, 고려·조선 시대 무덤유적들 30여기 이다. 그 중 삼국시대 전기 주거지는 남한에서 기존 조사된 것과 비슷한 양상을 하고 있는데 규모가 좀 더 크고 한쪽 벽에 만든 'ㄱ'자형 온돌시설이 특징적이다. 고려시대 건물지는 모두 4기가 조사되었는데 서로 복잡하게 중복되어 있어 정확한 양상을 파악하기는 힘들었다. 다만 출토되는 유물로 보아 상감청자가 발생하기 이전인 12세기 경으로 추정된다. 이 개성공업지구는 계획에 의하면 공업지구 800만평, 배후 생활지구 및 기타 시설 지구 1,200만평으로 나뉘는데, 이번 조사는 공업지구 800만평 중 1,900만평에 대해서도 이번과 같은 동일한 문화유적 조사를 실시하여야 한다는 선례를 남긴 것이 가장 큰 의의라 할 것이다. 또한 고려와 조선시대에 이르는 수 많은 분묘들이 확인되었는데 특히 고려시대 토광묘에서는'황송통보(皇宋通寶 : 1039년 주조)'를 비롯한 동전과 유리구슬 들이 확인되어 고려시대 개성이던 사람들의 문화상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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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조사관 연구개요

남한산성은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약 24km 떨어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있다. 성벽은 주봉인 청량산(497m)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연주봉, 동쪽으로 망월봉과 벌봉, 남쪽으로 몇 개의 봉우리를 연결해서 쌓았다. 성벽의 외부는 급경사를 이루는데 비해 내부는 경사가 완만하고 평균고도 350m내외의 넓은 구릉성 분지를 이루고 있다. 이 남한산성은 한강변에 형성된 넓은 충적대지와 팔당에서 한강하류에 이르는 넓은 수계가 가시권에 속하며 한강 이북지역의 아차산 일대와 불암산과 인왕산까지도 조망이 가능하다. 남한산성과 관련한 기록으로는 삼국사기에 의하면 문무왕 12년(672) 신라가 당의 침공에 대비하여 주장성을 쌓았다는 것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남한산성에 대한 수축논의는 조선시대초기부터 계속되어 왔지만 이괄의 난과 청나라의 군사적 위협이 전개되면서 축성논의가 활발히 전개되었으며 결국 인조 2년(1624) 수축을 단행하여 인조 4년(1626)에 완료하였다. 그 후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다시 대대적인 수축이 이루어졌고 숙종대와 영조대에도 수축되었다. 하지만 1907년 일제가 산성의 무기고와 화약폭파를 단행하면서 산성내 많은 시설물들이 불에 타거나 붕괴되었으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많은 유적이 훼손되었다. 이후 1950년대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63년에는 사적 제57호로 지정되어 성벽과 성벽 기저부로부터 약 30m 범위가 보호구역으로 설정되었다. 현재는 성벽을 포함하여 12건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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